유사종교의 잘못된 이론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 2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면 기차, 기치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은것은 백두산 >
이 동요는 과연 우리에게 <원숭이는 백두산이다> 라는 것을 알려주고자 하는 것일까 ?
그렇지 않다는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성경을 해석하는 신천지 예수교 증거 장막성전(이하 '신천지')의 논리이다 그들은 성경을 한구절 한구절 떼어내어, 예를 들어 <원숭이 엉덩이는 빨갛다> 는 구절을 찾고, 빨가면
사과는 구절을 찾아가면서, 결국 <원숭이는 백두산>이라는 결론을 가르친다 성경의 장章들을 직접 펼쳐가며 따라가니, 현혹된 사람들은 어느새 성경에 <원숭이는 백두산>이라 쓰여 있고 하느님께서 그것을 말씀하셨다고 믿게 된다
예수님은 당신을 믿는 사람 누게에게나 영원한 생명을 주실것이다
신천지에 따르면 비유로 쓰인 성경을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은 이세상에 한 명뿐이다 구약 시대 때는 시대마다의 예언자들이었고 신약 시대에는 나자렛에서 자란 예수였고 지금 우리 시대에는 <원숭이는 백두산이다> 와 같은 방법으로 성경을 찾아본 결과 영을 받은 한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별한 사람으로 영을 받았기 때문에 성경을 해석할 유일한 능력을
가질뿐더러,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가 완성하지 못한 구원을 완성할 사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를 믿으면 비밀을 알
수 있고, 예수가 완성하지 못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신천지의 교주인 이만희다
그들은 <교주 이만희를 믿는 사람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그들이 이야기하는 구원은 <죽지 않는 것> 즉 지금의 육체를 잏지 않고 지금의 모습 그대로 영원히 사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아니 그렇게 믿는다 궁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또다시 그들 논리에 맞추어 성경에서 찾아보니 14만 4천명뿐인데 신천지의 14만 4천명에 속하지 못하게 되면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영원한 지옥 불에 떨어진다 하지만 14만 4천명에 속하기만 한다면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공덕으로 가족까지 구원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은 잠시 가족과 떨어져 신천지에 전념해야 하나 곧 다가올 구원의 날 가족도 친척도 지인도 모두 자신의 덕으로써 함께 만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신(요한1.14)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십자가의 죽음으로 당신의 구원사업을 실패로 결론 맺었을까? 십자가에서 예수의 몸은 죽고 영만 빠져나와 떠돌다가 어느 한 사람의 몸에 들어가 그를 새로운
예수그리스도로 만들 수 있을까 ? 그리고 사랑의 하느님이신 예수그리스도는 정해진 14만 4천명만 궁원으로 이끌까?
"십자가에 달려 죽은 나자렛 사람 예수님은,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영원한 아드님 이시고, 하느님에게서 나오셨으며(요한13,3) 하늘에서 내려오셨고(요한 3,13;6.33)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 (가톨릭교리서423항)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대로 죽음을 이기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 부활하신분을 실제로 만난 제자들이 이를 증언한다 (가톨릭교리서 659항 참조)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역시 장차 부활할것임을 확신시켜 주시는 사건이다 이는 한계를 가진 인간이 생각해 낼 수 없는
하느님의 뜻(신비)이며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초월적 사건이다 이를 통해 우리 모두는 죽어야 할 인간이지만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부활할 것임을 보여주신다 그러나 예수니의 죽음으로 영과 육이 갈라져 새로운 예수를 선택한다는 신천지의 <상상>속에 예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성부 성자 성령의 하느님은 한분이시며 가각의 위격位格을 지니신 같은 하느님이시다 따라서 성령만을 삼위에서 분리시켜 떠돌아다니는 존재로 만들고 후에 한사람의 몸을 선택해 결합했다는 신천지의 논리는 선령을 하느님이 아닌, 하느님이 되게하는 기능정도로 치부해버리는것과 같다 또한 <모든 사람이 구원받게 되기를 원하시는> (1티모2.4) 하느님은
14만 4천이라는 적은수의 사람만을 구원하시지는 않을것이다
그리스도의 다시오심(재림)을 기다리는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이다 <영광속에 다시오실 > 예수님은 당신을 믿는 사람 누게에게나 영원한 생명을 주실것이다 이와같은 희망의 초대 앞에서 편협하고 왜곡된 믿음으로 점철된 낯선 사람의 목소리에 현혹되지 않고 우리의 고귀한 믿음을 간직해야 한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로마 8.24)
마산 교구보에서 옮긴 명형진 시몬 신부님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