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를 찾아서

93 구십세번째 순례지 경기도 하남 구산성지

하늘나그네 2016. 3. 7.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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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3월7일사순 제4주간 월요일 

오늘은 경기도 하남시 망월동 387-10  구산성지를  찾아보았다

오전 8시에 창원에서 출발할때 날씨는  흐리고  조금 쌀쌀하였다

12쯤  성지에 도착하여보니  성지주변에 신도시에  고층아파트가  많이 건설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주차장입구도  공사중이었다

마을을 둘러싼 뒷산이 거북이 형상을 닮았다는 구산(龜山) 마을은 팔당 부근 한강변에 위치하며 순교자들의 숨결이 170여 년이 넘도록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야트막한 언덕 모양의 성지 정문을 들어서면 바로 앞에 형형색색의 도자기 작품으로 둘러싸인 우리의 도움이신 성모 마리아상(성모자상)이 보인다. 독특한 외형의 ‘우리의 도움이신 성모 마리아상’은 구산 성지 초대사제인 고(故) 길홍균 이냐시오(1931-1988년) 신부가 꿈에서 본 성모님의 모습을 토대로 고 김세중 프란치스코(전 서울대학교 미대 학장) 화백이 조각해, 지난 1983년 축성된 것이다.


 


 

 

 

 

 

 

 

 

나는 천주교인이오. 살아도 천주교인으로 살고 죽어도 천주교인으로 죽을 것입니다

 

 

 

 

 

 

 양반의 자제로 태어나 유복한 살림과 존경받는 가문에서 남부러울 것 없었던 김성우가 신앙의 험로를 걷기 시작한 것은 1830년경으로 알려져 있다. 경주 김씨 계림군파(鷄林君派)의 15대 손인 김영춘의 맏아들로 정조 19년(1795년) 구산에서 태어난 그는 두 동생과 함께 세례를 받고 친척과 이웃들을 입교시켜 이 지역을 교우촌으로 만들었다. 한동안 유방제 신부를 모시고 회장직을 수행하며 온 마을에 복음을 전한 그는 1836년 모방(Maubant) 나(羅) 신부가 입국하자 자기 집에 모방 신부를 모시기도 했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됐다가 간신히 풀려났던 그는 1840년 1월경 다시 가족들과 함께 붙잡혀 한양 포도청으로 압송되었다. 포도청에서 형조로 이송되어 갖은 고문을 당한 그는 배교를 강요하는 재판관에게 “나는 천주교인이오. 살아도 천주교인으로 살고 죽어도 천주교인으로 죽을 것입니다.”라며 결코 신앙을 굽히지 않았다.

요지부동의 굳은 신앙에 결국 그는 이듬해 4월 29일 47세의 나이로 순교했고,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가 마침내 1984년 5월 6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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