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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11월1일 일요일 모든성인대축일 11월 위령성월이 시작되는
첫주 첫날 오늘은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446 남한산성 성지를 찾아보았다
아침 7시에 창원에서출발 하여 11시에 남한산성에도착하였다 도착해보니 차와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산성 입구 도로에서 주차장까지 주차장 비슷하다
그렇지만 성지로 들어가는 사람은 너무 적았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1839년) 이후 처형터가 있어 기해박해(1839년)와 병인박해(1866년) 당시 광주(廣州) 일원, 양주(楊洲), 용인(龍仁), 이천(利川)에서 잡혀 온 교우들이 치명, 순교한 곳이다.
원래 남한산성이 위치한 자리는 신라 문무왕(661-681년)이 쌓은 주장성(일명 일장산성)의 옛터로 그 후 몇 차례 축조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남한산성은 조선 인조 2년(1624년) 때 크게 고쳐 지은 것으로 후금국의 위협과 이괄의 난을 계기로 2년간에 걸쳐 축성됐다고 한다.
성의 둘레는 약 8킬로미터에 달하고 높이는 7.3미터가량이다. 동서남북 4군데에 문루가 있고 역시 4방위에 각각 장대(將臺 : 옛날에 장수가 올라서서 명령, 지휘하던 대)가 있었는데 현재는 수어 장대(守禦將臺)만이 남아 있다. 또 원래 9개의 절이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지금은 장경사만 남아 있다.
살아서 동문을 들어온 이들은 죽어서는 물이 빠지는 구멍으로 성 밑에 파놓은 수구문을 통해 내팽개쳐졌다. 그래서 수구문(水口門)은 시구문(屍口門)이 됐고 이곳으로 흘러내리던 물도 핏물이 됐으며 동문 밖 계곡에는 시신이 쌓였다.
시구문은 동문을 바라보며 왼쪽 길 바로 밑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얼핏 보면 잘 알 수 없고 얼기설기 철조망으로 가려 놓은 밑으로 잘 들여다보면 어른 두어 명이 허리를 굽히고 다닐 만한 크기의 사각진 구멍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옆길로 돌아 비탈길을 내려서 시구문 바깥쪽으로 내려서면 마치 당시의 처참한 광경이 눈에 보이는 듯 선하고 그 험한 고통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 내고야 말았던 선조들의 굳은 신앙이 메아리치는 듯하다.
동문의 애달픈 이야기를 뒤로 하고 비탈을 따라 1킬로미터 정도 걸어 올라가면 남한산성 로터리가 나온다. 로터리는 북문과 서문, 남문으로 가는 길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계절이나 날씨에 따라 적절한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좌석 직행 버스가 성남이나 광주 쪽에서 로터리까지 올라오기 때문에 승용차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쉽게 성을 둘러볼 수 있다.
이 로터리에 천주교도들을 수감했던 옥 터와 처형 터가 있다. 동문 쪽에서 올라오면서 로터리에 도착하면 오른쪽에 있는 주차장이 옥 터로 추정된다. 정면에는 섭정 10년간 2만여 명의 천주교인을 학살한 것으로 전해지는 대원군의 영세 불망비(永世不忘碑)가 세워져 있어 세월의 무상함을 일러 주는 듯하다. 어느 사찰 승려들이 세워 준 것으로 전해지는 불망비와 마주한 곳이 바로 처형지였다고 교회사가들은 전한다. 여기서 처형된 교우들이 시체가 되어 산비탈로 질질 끌려 내려가 동문 밖 개울로 던져졌다.
집토끼인지 산토끼인지 내앞으로 올때 찍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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