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를 찾아서

89 팔십구번째 순레지 경기도 이천 어농성지

하늘나그네 2015. 10. 11.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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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5년 10월11일 연중제28주일 오늘은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어농리 322-4 

어농 성지를 찾아 보았다 

 

 

여주와 함께 찰지고 기름진 쌀로 유명한 경기도 이천시 너른 들 가운데 위치한 어농(於農) 성지는 말 그대로 ‘농사짓기에 알맞은 땅’으로 박해 당시 교우들이 숨어들어와 농사를 짓고 신앙을 지키며 뼈를 묻은 거룩한 땅이다. 이곳에는 한국 교회에 최초로 성직자를 영입해 오기 위해 중국을 세 번이나 왕래한 조선교회의 밀사 윤유일 바오로(尹有一, 1760-1795년)와 그 일가족의 묘가 모셔져 있다.

 

 

어농 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때 남한산성에서 백지사형(白紙死刑)으로 순교한 정은 바오로(鄭溵, 1804-1866년)의 묘가 모셔진 단내 성지와도 지름길을 통하면 채 6km 남짓의 거리밖에 안 되므로 두 성지를 한데 묶어 순례하는 코스가 괜찮을 듯하다.

 
윤유일 바오로를 포함한 파평 윤씨 온 가족이 박해의 서슬 아래 희생된 후 200여 년 동안 그 후손들은 뿔뿔이 흩어져 족보도 없고, 또 교회 안에서는 그 후손이 전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다가 1987년에 이르러서야 후손 중 하나인 윤필용 씨가 나타났고 그의 증언에 의해 이곳 선산 안에서 윤유일 바오로의 부친 윤장과 그의 동생 윤유오 야고보(尹有五, ?-1801년)의 묘를 확인했다.
 
이에 따라 윤유일과 그의 숙부 윤현 · 윤관수, 사촌 누이동생인 윤점혜 아가타(尹点惠, ?-1801년)와 윤운혜 루치아(尹雲惠, ?-1801년) 그리고 한국에 들어온 최초의 외국인 사제인 주문모 야고보(周文謨, 1752-1801년) 신부와 그의 입국과 사목을 돕다 순교한 지황 사바(池璜, 1767-1795년), 최인길 마티아(崔仁吉, 1765-1795년), 강완숙 골룸바(姜完淑, 1761-1801년) 등의 의묘(擬墓)를 만들었고, 1987년 6월 28일 수원 교구장 고 김남수 주교의 주례로 축복식을 갖고 성역화했다. 한국 교회사 안에서 순교자 윤유일이 갖는 중요한 의미는 그가 바로 한국 교회가 처음으로 성직자를 영입해 명실 공히 교회의 모습을 갖추는 데 기여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어농 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때 남한산성에서 백지사형(白紙死刑)으로 순교한 정은 바오로(鄭溵, 1804-1866년)의 묘가 모셔진 단내 성지와도 지름길을 통하면 채 6km 남짓의 거리밖에 안 되므로 두 성지를 한데 묶어 순례하는 코스가 괜찮을 듯하다.

 
윤유일 바오로를 포함한 파평 윤씨 온 가족이 박해의 서슬 아래 희생된 후 200여 년 동안 그 후손들은 뿔뿔이 흩어져 족보도 없고, 또 교회 안에서는 그 후손이 전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다가 1987년에 이르러서야 후손 중 하나인 윤필용 씨가 나타났고 그의 증언에 의해 이곳 선산 안에서 윤유일 바오로의 부친 윤장과 그의 동생 윤유오 야고보(尹有五, ?-1801년)의 묘를 확인했다.
 
이에 따라 윤유일과 그의 숙부 윤현 · 윤관수, 사촌 누이동생인 윤점혜 아가타(尹点惠, ?-1801년)와 윤운혜 루치아(尹雲惠, ?-1801년) 그리고 한국에 들어온 최초의 외국인 사제인 주문모 야고보(周文謨, 1752-1801년) 신부와 그의 입국과 사목을 돕다 순교한 지황 사바(池璜, 1767-1795년), 최인길 마티아(崔仁吉, 1765-1795년), 강완숙 골룸바(姜完淑, 1761-1801년) 등의 의묘(擬墓)를 만들었고, 1987년 6월 28일 수원 교구장 고 김남수 주교의 주례로 축복식을 갖고 성역화했다. 한국 교회사 안에서 순교자 윤유일이 갖는 중요한 의미는 그가 바로 한국 교회가 처음으로 성직자를 영입해 명실 공히 교회의 모습을 갖추는 데 기여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1791년  윤지충이  순교할 무렵

옥에 같힌  사람들에게  밥을  해 나르다가  들켜  잠시  옥에  갇혇다가

풀려날때  겁을  먹은  남펀이  강완슥을  쫓아낸다

이때  남편의  전처 아들과  시어머니가  며느리  강완슥을    따라   서울로  올라간다

 

이때  체포령이  내려진   주문모  신부를  찾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던중

강완숙이  자기집   광속에  숨겨놓은  신부님이  걱정이다  

추운  겨울날씨에   방으로  모시자니    시어니가  관가에  밀고  하지않고  

자기처럼  목숨을  걸고  지켜주실지  알수없다 

 

강완숙은  어느  날부터  아프다고  더러누워   밥을  굶는다

이틀째  단식에  들어갈때  시어머니가   권합니다

"의원에게  가보아라"

"제병은  의원이 낫게  해줄 병이  아닙니다"

사흘째  단식에  들어 갈  때  강완숙의  병이  마음에  생긴 줄  알고  이렇게  말합니다

"너를  믿고  여기까지  따라온   나에게  사흘씩  굶어면서도  말하지  않고  

이렇게  누운걸  보니  아마도  죽을 것  같다   가슴에  맺힌  병을  억지로  말하라

그럴수는  없고   네가  죽는 다면   나도  살  이유가  없다"

그렇게  말하고는  강완숙  옆에  드러  눕습니다   같이  굶어  죽자는  거지요

강완숙은  시어머니의  결의가  어느  정도인지  보려고  이틀을  더  굶습니다

시어머니도  죽을  각오로  이틀동안  꼬박  굶습니다

 

 

다셋째  되는  날  강완숙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합니다

"어머님  내마음  속  병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중국에서  우리를 사목하기  위해서  신부님이  오신걸  아십니까?"

"정말  그런  신부님이  와  계시는거냐?"

"저도  잘  모르지만 조정에서  그를  잡으려고  하니 언제  잡힐지 모릅니다

내게  영적  양식과  먹이를  주는  목자가  어디서  주무시는지   잡수시는지  알지  못하는데 

내가  어떻게  편하게  밥을 먹고  잠을  잘  수  있겠습니까   이게  내 병입니다"

 

시어머니가   어지간합니다  이 말을  듣더니  벌떡  일어나  말합니다

"내가  너를  대단한  여자로  봤는데 이제보니  너  형편없구나

그병이라면  굶을일이  아니다  먹자  먹고  우리둘이  힘을  내서  신부님을  찾아  우리집에  모시면  될것아니냐"

강완숙은  힘이 났습니다  너무  기뻐  미음조차  넘기지  못하고 나가서  주문모  신부를  방으로 모십니다

 

                          <하늘로  가는  나그네 >    중에서

 

 

저희는  이렇게  할  용기가  없어  부끄럽지만

사제의  해에   이글을  우리의  사제에게  바쳐 올립니다

신부님  신부님  언제나  건강하시고   우리  사제  되소서

 


 

 

 

 

 

 

목자가 없던 한국 교회에 첫 사제로 발을 디딘 주문모 신부는 서울 북촌(北村 : 지금의 계동) 최인길의 집에 머물렀고, 처음 몇 개월 동안은 아무 어려움 없이 성직을 수행했다. 그러나 한 밀고자에 의해 그의 입국 사실이 조정에 알려지면서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교우들의 재빠른 처신으로 주문모 신부는 강완숙의 집으로 피신했고, 최인길은 시간을 벌기 위해 자신이 신부로 위장하고 포졸들을 기다렸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아 위장이 밝혀지고 주문모 신부의 입국 경위가 밝혀지면서 그의 입국을 도운 윤유일 · 지황 · 최인길 세 사람은 모두 체포되었다.

 
체포된 날부터 포도청에서 혹독한 형벌을 받은 그들은 주문모 신부의 행방을 발설하지 않았고, 끝까지 굳은 신앙을 고백하였다. 결국 박해자들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사정없이 그들을 때려 숨지게 한 후 비밀리에 그 시신을 살곶이다리(현 한양대학교 동쪽) 부근의 강물에 던져버렸다. 이때가 1795년 6월 28일(음력 5월 12일)로, 당시 윤유일의 나이는 35세, 최인길은 30세, 지황은 28세였다. 이처럼 사제가 없어 미사를 봉헌할 수 없었던 불완전한 한국 교회에 신부를 처음으로 모셔와 완전한 교회로 만들었던 윤유일과 지황 그리고 최인길은 교회사에 길이 남을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

 

 

 

 

 

여기서 한국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기도를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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