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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골성지에 이어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 632-2 은이성지를 찾아보았다
성지에 도착했을때 마침 비가 많이 왔다 그러다 보니 골배마실을 돌아보지 못하고 왔다
은이 마을은 한국 교회 최초의 방인 사제였던 성 김대건 신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인연을 간직한 곳이다. 김 신부가 소년 시절을 보낸 골배마실에서 불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은이 마을은 그가 모방 나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고 최양업, 최방제와 함께 신학생으로 간택되어 마카오로 파견된 곳이다.
또 사제 서품을 받고 귀국한 김대건 신부의 첫 사목지가 바로 은이 공소로서 "용인 천주교회사"(오기선 신부 감수, 조성희 지음)는 이에 대해 "은이 공소는 조선 교회 사상 최초의 본당"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바로 이곳에서 김 신부는 조선 땅에서는 처음으로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했고, 바로 이곳이 체포되기 직전 공식적으로 최후의 미사를 드렸던 곳이기도 하다. 한국 교회의 가장 대표적인 성인으로 추앙받는 김대건 신부가 성소의 씨앗을 뿌렸던 곳이자 그 열매가 가장 먼저 풍성하게 열렸던 곳이 바로 은이 마을, 은이 공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은이 공소와 관련된 또 한 명의 성인은 바로 모방 나 신부이다. 그는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선교사로 조선 교구 초대 교구장이었던 브뤼기에르 주교가 1835년 조선입국을 목전에 두고 병사하자 그 뒤를 이어 부주교로서 조선 교구를 맡게 됐다.
당시 몽고에서 한문 공부를 하며 브뤼기에르 주교로부터 이미 모든 사목 권한을 위임받은 모방 신부는 브뤼기에르 주교가 준비했던 길을 따라 조선 입국을 서둘러 국경에서 조선 교우들을 만나고 1836년 초 마침내 조선 땅을 밟음으로써 파리 외방 전교회원으로서는 최초로 조선에 입국한 선교사가 된다.
부활절을 서울에서 지낸 모방 신부는 본격적인 사목 활동에 나서 주로 경기도와 충청도 지역의 교우촌을 방문하고 2백여 명에게 세례를 주었다. 이 때 그의 사목 활동의 중심지가 바로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 용공에 위치한 은이 공소였다.
모방 신부는 1837년에 이르러서 샤스탕 신부를 맞아들여 함께 사목 활동을 함으로써 조선 교구 제2대 교구장 앵베르 범 주교가 그 해 말 입국할 때 이미 조선 교구의 교세가 두 배 이상으로 성장하는 등 큰 성과를 얻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모방 신부는 1839년 기해박해 당시 앵베르 범 주교, 샤스탕 신부와 함께 그 해 9월 홍주(洪州) 근처에서 스스로 잡힌 몸이 됨으로써 결국 9월 21일 새남터에서 순교의 영광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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