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를 찾아서

94 구십네번째 순례지 서울 관악구 삼성산성지

하늘나그네 2016. 3. 7.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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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성지에 이어 양근성지를  찾아 갔지만 월요일휴무로 문이 닫혀있어  다음에 다시 찾기로 하고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산 57-13  삼성산 성지를  찾았다

서울 둘레길에  위치해 있으며 또 맑은 계곡 물소리가

일반 등산객들에게도  좋은 휴식을  줄수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기도하는 곳으로 넘어가는 다리


 

 삼성산은 1839년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군문효수(軍門梟首)의 형을 받고 순교한 앵베르 주교와 모방 · 샤스탕 신부가 1843년부터 1901년 11월 2일 명동 성당 지하 묘소로 모셔질 때까지 묻혀 있던 묏자리이다. 본래부터 삼성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던 이곳은 세 분의 순교성인이 묻힘으로써 명실 공히 삼성산(三聖山)의 품위를 갖추게 되었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듯하다.

한국 천주교회사상 처음으로 이 땅에 발을 디딘 외국인 성직자인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1801년 신유박해로 순교한 후 30년만인 1831년 조선의 천주교회는 중국 북경 교구에서 독립해 '조선 교구'로 설정된다. 이어서 1836년과 1837년 사이에 프랑스 선교사인 모방, 샤스탕 신부와 앵베르 주교가 입국함으로써 조선의 교우들은 주문모 신부 이후 한 세대가 훨씬 지나서야 목자에 대한 갈증을 풀게 된다.
 
이들 세 성직자는 상복(喪服)으로 얼굴을 가리고 각 지방에 흩어져 있는 교우들을 찾아 밤낮으로 험한 산길을 걸으며 복음 전파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불과 1년 사이에 신자수가 9천 명으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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