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를 찾아서

111 백십일번째 순례지 제주 제주 대정성지

하늘나그네 2016. 4. 24.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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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수성지에 이어서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동일리 12  대정성지를 찾아 보았다

이제 마지막코스이다


2014년 9월27일 부산시 수영구 광안 4동 546-4 수영 장대골 성지를  시작으로  전국 111곳 성지를 모두 돌아보고 

2016년 4월20일 제주도  제주시 대정읍 동일리 12 대정성지를 끝으로  이렇게 마치는  날이다


주님 감사합니다

미천한  저희부부를  부르시어  성령으로  이끌어주시니  감사하나이다

시작을  허락하시고

마침을  허락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이름은 이제로부터  영원히 찬미 영광 받으소서



    한국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기도

 

이땅의 모든 순교자여,
    당신들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굳은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나이다.


저희는 현세에서 악의 세력과 치열하게 싸우며
    당신들이 거두신 승리의 영광을 노래하고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찬양하오니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위대하신 순교자들이여,
    천상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와 함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주소서.

지금도 어둠의 세력이 교회를 박해하고 있사오니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팔로 교회를 붙들어 보호하시며
    아직 어둠 속에 있는 지역에까지 널리 펴시도록 빌어주소서.


용감하신 순교자들이여, 특별히 청하오니
    우리 나라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당신들은 이땅에서 많은 고난을 겪으며 사시다가
    목숨까지 바치셨사오니


전능하신 하느님께 빌어주시어
    교회를 이땅에서 날로 자라게 하시며 사제를 많이 나게 하시고


신자들이 주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냉담자들은 다시 열심해지며
    갈린 형제들은 같은 믿음으로 하나 되고  비신자들은 참신앙으로 하느님을 알아
    천지의 창조주 인류의 구세주를 찾아오게 하소서.


      ○ 참으로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이여,
        저희도 그 영광을 생각하며 기뻐하나이다.
        간절히 청하오니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 빌어주시어
        저희와 친척과 은인들에게 필요한 은혜를 얻어주소서.

 

     또한 저희가 죽을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한결같이 믿어 증언하며
         비록 피는 흘리지 못할지라도 주님의 은총을 입어 선종하게 하소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지금은 천혜의 관광지로 봄가을이면 신혼의 단내가 온 섬을 물들이는 남녘의 제주. 세계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빼어난 풍광과 온화한 날씨로 찾는 이로 하여금 이국적인 정취마저 느끼게 하는 섬 제주가 조선 시대에는 중죄인들을 세상에서 격리시키는 유배지였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듯도 싶다.

 
유명한 백서(帛書) 사건으로 순교한 황사영의 부인 정난주(丁蘭珠, 본명 命連) 마리아, 다산 정약용의 맏형 정약현(丁若鉉)의 딸이기도 한 그녀가 남편을 잃은 뒤 두 살 난 아들을 데리고 하염없이 뱃길을 가야 했던 곳이 바로 제주이다.






제주가 맞이한 첫 번째 신앙인으로 기록되는 정난주는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大靜)에서 관비(官婢)가 되어 천수를 다한 뒤 모슬포(慕瑟浦) 뒷산에 묻혔다.
 
당당한 모습으로 천주를 증거하고 목숨을 바친 남편은 비록 천상의 영복을 누릴 것을 의심치 않았기에 영광이요 환희이기도 했지만 인간적으로는 엄청난 고통과 실의에 빠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거기에 겨우 두 살 난 젖먹이 아들 경한(景漢)을 데리고 떠나는 유배의 길은 너무나도 외롭고 고통스런 일이었다. 죄인으로 제주 땅을 밟은 뒤 자신은 물론 아들마저 죄인의 자식으로 평생을 멸시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차마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궁리를 거듭하던 정난주는 뱃사공에게 뇌물을 주어 매수하고 사공은 다시 두 명의 나졸에게 술을 먹여 역시 그들을 매수한 뒤 젖먹이를 추자도 예초리(禮草里) 서남단 언덕 위에 내려놓는 데 성공했다. 나졸들은 뱃길에서 아이가 죽어 수장(水葬)했노라고 보고함으로써 이 일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추자도에 남은 경한은 오씨(吳氏) 성을 가진 어부의 손에 의해 하추자도 예초리에서 장성하게 되는데 그 후손이 아직도 추자도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해 오는 이야기로는 경한이 추자도에 떨어뜨려졌을 때 그가 입고 있던 저고리 동정에서 나온 기록에 의해 그가 바로 황경한임을 알게 됐고 오씨의 아들로 키워졌기에 아직도 추자도에서는 오씨와 황씨가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혈혈단신으로 제주목 관비(官婢)로 신분이 추락하게 된 정씨는 제주의 거친 바람결만큼이나 모진 시련을 신앙과 인내로 이겨 냈다. 뿐만 아니라 풍부한 교양과 뛰어난 학식 그리고 굳건하고 깊은 믿음의 덕으로 주위 사람들의 칭송을 한 몸에 받았다. 그래서 그는 비록 노비의 신분이었음에도 ‘한양 할머니'라고 불리며 이웃의 사랑을 받았다.
 
그 후 37년간을 정씨는 오직 신앙에 의지해 살아가다가 1838년 음력 2월 병환으로 숨을 거두고 이웃들은 그 유해를 바로 이곳 모슬포 뒷산에 묻었다. 비록 그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 삶 전체가 순교자의 생애를 방불케 하는 굳건한 신앙의 증거로 가득했기에 후손들은 그를 순교자의 반열에 올리고 있다. 1994년 9월 5일 순교자 현양 대회 강론에서 김창렬 주교는 이렇게 말했다.
 
“신앙의 탓으로 이 고장에 유배된 유일한 증거자인 정 마리아 난주님을 순교자라고 말씀드리는 것에 대해 놀라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우리 보편 교회도 피 흘려 순교하지 않은 이들 중에서 어떤 분들은 순교자로 공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초, 교회사가 김구정과 김병준 신부는 수소문 끝에 정난주의 무덤을 찾아낼 수 있었다. 김씨 집안에서 대를 이어가며 무덤을 돌보아 왔기 때문이다. 이 무덤은 1977년에 순교자 묘역으로 단장되었다가 1994년 제주 신자들의 염원을 담은 ‘대정 성지’로 조성되었다.


옛날부터 말로만 들었는데  삼다도라고 제주도에 돌과 바람과 여자 세가지가 많다더니 실제로 와보니 돌이 많은것 같다

돌담이 많고  모든 돌은 육지의 차돌과 다르고  이렇게 스폰지처럼 구멍이 숭숭하다


성지옆에 마늘밭이 넓고 마늘대가 굵고  싱싱하였다

 

성지순례는  이것으로  끝난다





성지는 아니지만  숙소에서 가보라고  추천한   성산일출봉 인근에  있는 아름다운 성당 성산포성당을  찾아보았다





















성산일출봉이 왼쪽으로 저멀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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