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를 찾아서

3 세번째 순례지 부산 금정구 한국순교자 박물관

하늘나그네 2014. 10. 5.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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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순교자 묘에 이어서 부산시 금정구 부곡 3동 1-4   한국순교자 박물관을 찾아보았다

박물관 수녀님께서  우리부부의 모습이 보기좋다 하시며 확인도장을  직접 찍어주시며

성지순례를 끝까지  돌아서 잘 마치라고  격려해주셨다

 

 

 

박물관수녀님 이  아래와 같이 설명해주셨다

박해 시절 많은 사람이 보는데서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죽였다 

아래바닥 주욱 사람을 눞혀놓고 위에 높은데서 저 나무형구를 떨어뜰여 사람을 죽였다

이렇게 해서 <천주교를 믿으면 저렇게 처형된다>고  겁을 주려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오히려 그걸 쳐다는 사람들은  천주교가  어떤것이기에  저렇게 죽어가면서도  기쁘게 죽음을 받아들일까

하고  생각하게 되어  신자가  줄어들기는  커녕 신자가 더 늘어났다고  한다

 

저희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신 이땅의 순교자들이시여

믿음이 약한 불쌍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순교자들의 유해와 유물, 서책 및 형구 등이 전시된 순교자 기념관

부산 수영 장대에서 순교한 이정식 요한과 그의 일가족 4명을 비롯한 8명의 부산 순교자들의

유해가 이장되어 있는 이곳은 그동안 50년간 한국순교복자회에서  

‘부산 오륜대 한국 순교자 기념관’으로 운영해 오다가

2013년  10월부터 부산교구에서 성지를 담당하게 되어 명칭도 '오륜대 순교자 성지'로 바꾸었다.

 


부산에서 순교한 8명의 순교자들은 1868년 부산 수영 장대에서 군문효수 당한 동래 전교회장 이정식 요한, 그의 아들 이월주 프란치스코, 며느리 박조이(朴召史) 마리아, 조카 이삼근 베드로, 조카(혹은 아우) 이관복 야고보, 차장득 프란치스코, 양재현 마르티노, 옥조이(玉召史) 바르바라 등이고, 이들은 ‘박근기 사건’이 일어나 체포되었으며, 모진 악형에도 배교하지 않고 마침내 순교하였다. 유해는 동래구 명장동에 있는 갈멜 수녀원 뒷산 등에 묻혔다가 1977년 9월 17일 이곳 오륜대로 이장되었다.
해방 직후인 1946년 4월 21일, 개성 본당 사제관에서 방유룡(方有龍, 1900~1986, 레오) 신부에 의해 창설된 한국 순교복자수녀회는 수도회의 명칭 그대로 순교자들의 얼을 기리고 후손 대대로 순교의 신앙을 물려주기 위하여 수녀들은 전국을 누비며 전교하면서 순교자 유물과 교회사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 무렵 서울대교구에서는 병인박해(1866년) 100주년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절두산 순교 성지에 순교자 성당과 기념관을 세워 이에 한국 순교복자수녀회에서도 서울과 가장 멀리 떨어진 부산 지역 내에 순교자 기념관을 세우기로 하고 1982년 이곳에 오륜대 한국 순교자 기념관을 개관하게 되었다.
박물관은 모두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반적으로 순교자의 유물과 교회사 자료가 중점적으로 전시되어 있으며, 1층에는 한국 천주교 박해사 자료 및 순교자 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2층에는 교회 초창기 역사 자료가 전시되어 있으며 한국 교회 창설 200주년 및 103위 시성 기념 코너를 비롯하여 조선 말기 왕실 관련 민속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3층에는 김인순(루갈다) 기증 민속품 전시실이 있고 몇 계단 위로 성 김대건(金大建, 보명 芝植, 1821~1846, 안드레아) 신부와 최양업(崔良業, 1821~1861, 토마스) 신부 관련 특별 전시실이 아담하게 마련되어 있다.

 


◆  박근기(朴根基) 사건
1866년 병인박해가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될 시기에 동래 지역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들어온 신자들이 발각되어 체포되는 사건이 있었다. 1868년 6월 1일 《일성록》에 의하면 동래의 좌수영 관할 아래 있는 부산진에서 박근기가 체포되었다. 박근기는 “일본이 서양과 통상을 하고 있으니 조선에서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일본인을 통해 서양에 호소해 보자”는 생각 아래 몇몇 교우들과 뜻을 같이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의 글을 가지고 있던 그가 부산 첨사 윤석오에게 적발되어 동래부로 이송되어 가두어졌다. 아마도 사형 당했을 것으로 짐작되며 같은 사건에 연루된 그 외 7명의 행방도 확실하지 않다. 이때 동래 지역에서는 천주교 신자 8명이 사형 당했다. 이들은 이정식, 이관복, 박조이, 이월주, 이삼근, 양재현, 차장득, 옥조이 등이다.

     ▒  아직도 슬픔이 모자라서 (부산 오륜대에서)  <김영수> ▒

          '죽어도 버릴 수 없다' 는 눈빛들이
          땅의 나뭇잎들 죄다 흔들고
          하늘의 흰 구름들 죄다 흔들고
          아득히도 먼 나를 흔듭니다
          나는 아직도 슬픔이 모자라서
          목숨 걸지 못하고 
          나는 언제 죽음 건너 삶 속에서
          붉은 꽃은 붉게
          흰 꽃은 희게 빛나는 것
          늘 보게 될까요
          나의 땅 나의 하늘도
          이곳 구월산에서 만나 부활하기를
          기도의 화살 당기며
          가물히도 먼
          영원의 까만 과녁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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