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를 찾아서

1 첫번째 순례지 부산 수영구 수영장대성지

하늘나그네 2014. 9. 28. 19:45
728x90
반응형
SMALL

 

 

 2014년 9월 27일 토요일  오후에  부산시 수영구 광안 4동 546-4  수영 장대골 성지를  찾아보았다

 

나는 오랫동안 생각해오던 일이 하나 있었다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고 싶은 일이었다

그러나 이책을 사놓고도   언제 어떻게 시작할지  망설이며 주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시작만 해놓고 못하면 못하더라도  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저질렀다

오늘부터 한국천주교 성지순례 책자대로 성지순례를 시작하였다

 

 

주님! 미천한 죄인을 부르시어

시작을  허락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시작이 저의 단순한  궁금증이나  호기심으로 끝나지 않게 하여주소서

 

 

주님께 청합니다 

이 시작에  마친날도  허락하여 주소서

이 시작이 이땅에 빛이 되신 순교자들의 신앙을 본받는 시작이 되게 하여주소서

이 시작이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지는  발걸음이 되게  하여주소서

 

주님의 이름은  찬미 찬송 받으소서!

한국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기도

 

 

이땅의 모든 순교자여,
    당신들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굳은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나이다.


저희는 현세에서 악의 세력과 치열하게 싸우며
    당신들이 거두신 승리의 영광을 노래하고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찬양하오니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위대하신 순교자들이여,
    천상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와 함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주소서.

지금도 어둠의 세력이 교회를 박해하고 있사오니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팔로 교회를 붙들어 보호하시며
    아직 어둠 속에 있는 지역에까지 널리 펴시도록 빌어주소서.


용감하신 순교자들이여, 특별히 청하오니
    우리 나라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당신들은 이땅에서 많은 고난을 겪으며 사시다가
    목숨까지 바치셨사오니


전능하신 하느님께 빌어주시어
    교회를 이땅에서 날로 자라게 하시며 사제를 많이 나게 하시고


신자들이 주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냉담자들은 다시 열심해지며
    갈린 형제들은 같은 믿음으로 하나 되고  비신자들은 참신앙으로 하느님을 알아
    천지의 창조주 인류의 구세주를 찾아오게 하소서.


참으로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이여,
    저희도 그 영광을 생각하며 기뻐하나이다.
    간절히 청하오니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 빌어주시어
    저희와 친척과 은인들에게 필요한 은혜를 얻어주소서.

 
또한 저희가 죽을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한결같이 믿어 증언하며
    비록 피는 흘리지 못할지라도 주님의 은총을 입어 선종하게 하소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2014년 8월16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이정식(李廷植) 요한과  양재현(梁在鉉) 마르티노   두분이 복자 품에 올랐다

       

      이정식(李廷植) 요한은 경상도 동래 북문 밖에 살던 사람이었다. 그는 젊었을 때 무과에 급제한 뒤 동래의 장교가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활 쏘는 법을 가르친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나이 60세 때 교리를 배워 천주교에 입교한 뒤로는 첩을 내보내고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다.

       

        요한은 이후 가족들을 열심히 권면하여 입교시켰으며, 누구보다 수계에 열심이었다. 화려한 의복을 피하고, 항상 검소한 음식을 먹었으며, 애긍에 힘쓰면서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노력하였다. 또 작은 방을 만들어 십자고상과 상본을 걸고 묵상과 교리 공부에 열중하였다.

       

        이러한 열심 때문에 요한은 입교한 지 얼마 안되어 회장으로 임명되었고, 그는 언제나 자신의 본분을 다하였다. 그러던 중 1866년에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가족들과 함께 기장과 경주로 피신하였다가 다시 울산 수박골로 피신하여 교우들과 함께 생활하였다.

       

        1868년 이정식 요한 회장은 동래 교우들의 문초 과정에서 그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자 동래 포졸들은 그가 사는 곳을 수소문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는 그의 거주지를 찾아내 그곳에 있던 교우들을 모두 체포하였다. 그때 요한의 아들 이관복(프란치스코)과 조카 이삼근(베드로)은 요한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스스로 포졸들 앞으로 나와 자수하였다 .

       

        이내 동래로 압송된 요한 회장은 그곳에서 대자 양재현(마르티노)을 만나 서로 위로하며 신앙을 굳게 지키자고 다짐하였다. 그리고 천주교의 우두머리로 지목되어 문초를 받게 되자, 요한은 천주교 신자임을 분명히 하고는 많은 교우들을 가르쳤다는 것도 시인하였다. 그러나 교우들이 사는 곳만은 절대로 입밖에 내지 않았다. 또 형벌을 받으며 배교를 강요당하였지만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다.

       

        요한과 동료들은 문초와 형벌을 받은 뒤 47일 동안 옥에 갇혀 있으면서 고통을 당해야만 하였다.

      그러나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신앙을 버리고 석방된 사람은 없었다


      동래 관장은 마침내 사형을 결정하였다. 그런 다음 옥에 있는 신자들을 끌어내 군대 지휘소가 있는 장대(將臺)로 압송하였다. 이때 사형을 맡은 군사들이 부자를 한날에 죽이는 것을 꺼려하자, 동래 관장은 동시에 사형을 집행하라고 명령하였다. 요한은 참수형을 당하기에 앞서 삼종 기도를 바치고 십자 성호를 그은 다음에 칼을 받았으니, 그때가 1868년 여름으로, 당시 그의 나이는 75세였다.

       

      순교 후 그의 시신은 가족들에 의해 거두어져 사형장 인근에 안장되었다.





       

       

      양재현(梁在鉉) 마르티노 복자

       

       1827년에 태어난 양재현(梁在鉉) 마르티노는1) 언제부터인가 경상도 동래의 북문 밖에서 살았다.

      그는 동래에서 좌수(坐首)라는 직책을 갖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정식(요한) 회장을 만나면서 천주교 신앙에 대해 알게되었고,

      이후 그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1868년의 박해 때 마르티노는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이 알려져 동래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당시 그는 포졸들이 집으로 들이닥치자 태연하게 그들을 맞이한 뒤 관아로 끌려갔다.

       

        이윽고 관장 앞으로 나가 문초와 형벌을 받게 되자, 마르티노는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는 형벌을 달게 받았다. 또 관장이 배교를 강요하자, “절대로 천주교 신앙을 버릴 수 없다.”고 하면서 조금도 굴복하지 않았다. 그런 다음 오랫동안 옥에 갇혀 있다가 다시 문초를 받고 수군의 병영으로 이송되었다.

       

        양재현 마르티노는 수군의 병영에서 다시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배교를 거부함으로써 옥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옥에 들어가서는 옥졸의 꾀임에 빠져 ‘돈을 주겠다’고 약속한 뒤 몰래 그곳을 빠져 나와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옥졸은 마르티노가 집으로 돌아가자 관장에게 가서 ‘죄수가 몰래 도망쳤다’고 거짓으로 보고하였다. 이내 포졸들이 다시 마르티노의 집으로 몰려왔고, 그는 즉 체포되어 동래 관아로 압송되었다. 마르티노의 신앙심은 이때부터 다시 굳건해지게 되었다. 그는 혹독한 형벌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천지의 큰 부모이신 천주를 배반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신앙을 증거하였다.

       

       

        이후 마르티노는 통영에 있는 수군의 병영으로 이송되어 여러 차례 형벌을 받아야만 하였다. 그런 다음 다시 동래 관아로 끌려와 옥중에서 이정식 회장과 동료 교우들을 만나게 되었으며, 서로를 위로하면서 신앙을 굳게 지키기로 약속하였다.동래 관장은 마침내 사형을 결정하였다. 그런 다음 옥에 있는 신자들을 끌어내 군대 지휘소가 있는 장대(將臺)로 압송하였다. 이때 마르티노는 끝까지 배교를 거부하고 십자 성호를 그은 다음에 칼을 받았으니, 그때가 1868년 여름으로, 당시 그의 나이는 42세였다.순교 후 그의 시신은 가족들에 의해 거두어져 사형장 인근에 안장되었다.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