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세계

91 마카베오(2)

하늘나그네 2011. 11. 23.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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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자 그의 제국은 양분된다.

‘시리아’를 중심으로 하는 세력권과 ‘이집트’를 중심으로 하는 세력권이다.

두 세력이 부딪치는 완충지대에 ‘팔레스티나’가 있었다.

이스라엘은 양쪽의 눈치를 봐야하는 운명이 되었다.

 

 

처음에는 이집트 세력이 이들을 80년간 지배했다.(BC 320년-200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다.
그들은 ‘헬레니즘’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리스 문화를 심는데 열정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종교적 자치권’을 부여하며 대국의 입장을 취했다

.

그러나 기원전 198년부터는 ‘셀레우코스 왕조’가 지배한다.

시리아를 통치하던 세력이다.

전쟁을 일으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몰아낸 것이다.

이들의 지배는 60년이었다.

하지만 경제적 착취가 극심했고 강제로 그리스 문화를 심으려 했다.

가장 극렬했던 사람이 ‘에피파네스’라 불린 ‘안티오코스 4세’다.

그러자 많은 유다인들이 이스라엘을 떠나 이집트로 건너갔다.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수도 ‘알렉산드리아’에는 집단 거주지가 생겨났다.

이들은 ‘회당’을 중심으로 뭉쳐 살았는데 ‘디아스포라 유다인’이라 부른다.

‘해외거주 유다인’ 이라는 의미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들이 만주로 옮겨간 것과 같은 이치다.


시리아의 세력은 기원전 140년경 이스라엘에서 물러난다.

‘마카베오 가문’에 의해 축출당한 것이다.

마카베오의 항전은 아버지 ‘마타티아스’가 먼저 시작했다.

사건은 예루살렘 인근의 작은 도시 ‘모데인’에서 일어났다.(1마카 2,15-28)

임금 ‘에피파네스’의 명령으로 이곳에도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경배를 시작했다.

어느 날 임금의 관리가 확인을 위해 왔는데 마타티아스는 그를 죽이고 신상을 파괴해버린 것이다.


많은 유다인들이 마타티아스 주위에 모여들었고 그들은 게릴라전을 펼치며 저항했다.

항전 소식은 전국으로 퍼졌고 ‘하시딤 세력’이 가세하자 거국적인 조직이 되었다.

하시딤은 율법준수에 철저했던 상류층 신앙집단이었다.

 

예수님 시대의 ‘바리사이파’는 하시딤에서 파생된 하나의 분파라고 할 수 있다.
마타티아스가 죽자(BC 166경) 셋째 아들 ‘마카베오’가 뒤를 이었다.

그는 산발적인 저항이 아니라 대규모 공격을 감행했다.

에피파네스는 수차례 토벌대를 보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나중에는 방어에 급급해야 했다.

그의 주력부대는 시리아 동쪽의 ‘파르티아’ 제국과 전투 중이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마카베오는 예루살렘을 탈환했고 성전에 세워진 제우스의 신상을 제거했다.

그리고 새로운 제단을 만들고 제사를 바쳤다.

유다인들은 축제를 지내며 환영했다.

기원전 164년 12월의 일이다.(1마카 4,36-60)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은 ‘임시 자치권’을 획득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신은근 신부(바오로, 호계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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