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것을 배우기
죽음을 애써 구하지 마라.
죽음이 당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충만하게 만드는 길을 찾아라.
- 다크 함마숄드
하느님은 모든 사람들의 운명을 죽음으로,
그리고 죽음 후에는 심판으로 정하신다.
그러나 죽어 가는 모습들은 하나도 같지 않다.
- 아폴로니우스 성인
어떤 의미에서 보면 행복과 죽음에 관한 생각, 죽음의 현실을 화해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죽음에 집착하는 것은 우울증의 증상으로 나타난다.
죽음의 손아귀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마른하늘에서 구름을, 장미꽃 뒤에서 소멸의 그림자를 보기 십상이다,
그런 사람들은 어울리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모든 기쁜 소식에도 그들은 “그래. 하지만, 내일이면 우리 모두가 죽을 꺼야”하고 말한다.
물론 이와 정반대의 극한적인 경향이 모든 소멸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부정하는 광적인 낙관주의다.
텔레비전 광고, 체육관에서 미친 듯이 운동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이런 모습이 보인다.
이 낙관주의에 의하면, 중요한 사실은 다만 우리가 오늘 살아있다는 사실뿐이다.
그러나 진정한 삶은 불멸성을 억지로 믿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대면하는 삶이다.
죽음의 실제를 회피한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망상, 두려움, 삶의 깊이에 몰입하지 못하거나,
내적인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것뿐이다.
죽음은 가까이 있건 멀리 있건 간에,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어떤 가능성뿐만이 아니다.
죽음은 우리가 숨쉬기 시작할 때부터 우리의 존재 안에 짜여져 있다.
이렇게 본다면, 죽음을 어떤 일직선상의 끝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오히려 죽음이란 모든 것에 앞서 있는 어떤 차원이다.
죽음은 우리의 실존자체를 의문으로 만든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 질문을 회피하거나 비오는 날로 연기해 버린다.
파스칼이 말했듯이, “죽음, 비참함, 무지를 치유할 수 없어서,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하여,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참다운 행복은 불행한 생각들을 피하겠다는 결심으로 얻어질 수 없다.
그런 태도는 마치 우리가 비올 때를 제외하고 영원한 햇빛의 땅에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두려움이나 회피 없이 죽음을 직면하는 만큼, 우리는 두려움 없이 삶을 직면하기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참으로 행복의 시작이다.
만일 성인들의 행복이 더 견고한 기반에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죽음을 끝으로 생각하지 않고
어떤 새로운 것으로 과월하는 것이라고 여겼다는 점이다.
나치정권에 저항하다 처형된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이런 확신을 가졌다.
플로센베르크 감옥의 교수대에서 그는 동지들에게 말했다,
“이것이 끝이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생명의 시작이다.”
결국 성인들은 “다가올 세계의 생명”을 믿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에게 니체아 신경의 이 구절은 죽음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걸림돌이다.
교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매 일요일마다 똑같은 믿음을 입으로만 되뇌이고 있다.
아직도 영원한 생명이라는 개념은 구름에 쌓인 성처럼 우리들의 평상적인 체험으로부터 멀리 있다.
아마도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지상에서의 모든 고통이 끝난 후, 거기에 대한 미래의 보상처럼 여기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기도와 섬김의 삶을 살아간 성인들이나, 박해의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진 사람들은
단지 미래의 보상에 대한 희망에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영원한 생명을 이미 가졌고 만졌기 때문에 영생을 믿은 것이었다.
삶에 예의를!
성인들로부터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배우고 싶다면 특히 신앙이 그다지 굳건하지 못한 우리 같은 사람들은
미숙하게 영원한 생명의 주제로 뛰어오르는 것은 실수다.
또한 죽음으로 시작하는 것도 잘못이다.
죽음에 대한 성인들의 자세는 먼저 삶에 대한 자세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죽음이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살아있음의 피할 수 없는 측면이라면, 실존이라는 더 넓은 현상이 바로 진짜 신비이다.
다시 말하자면 질문은 단순히 “왜 우리가 죽는가?”가 아니라, “왜 우리는 살고 있는가?”이다.
이 질문에 대한 응답이 우리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음의 현실에 직면하는가를 결정하게 된다.
1961년 비행기 사고로 순직한 전 유엔사무총장 다크 함마숄드는 개인일기를 갖고 있었는데,
내적인 삶을 기록한 것으로 사후에 「비망록」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한 부분에서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누가 혹은 무엇이 질문을 던졌는지 모르며, 언제 그 질문이 나왔는지 모른다.
나는 대답했던 것조차 기억할 수 없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나는 어떤 사람에게 혹은 어떤 것에 ‘예’라고 대답했고,
그 시간부터 나는 실존이 의미로 가득 차 있으므로 삶도 목적을 갖고 있다고 기꺼이 승복하며 확신했다.”
성인들에게 삶의 의미는 부분적으로 그리스도의 삶, 죽음, 그리고 부활에서 드러난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삶의 의미와 목표를 드러내고 있다면, 그것이 실제의 본질에 관한 어떤 진실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하느님께서 우리 실존의 경계선과 한계를 지웠으며,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진실이다.
그러므로 삶의 실제에 근본적으로 ‘예’라고 응답하면서 성인들은 그 대답을 예치해 두었다가
죽음의 순간에 현금으로 바꾸는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그들의 ‘예’는 기본적으로 현재 속에서 삶을 향하여 취한 태도였다.
그것은 새로운 생명이 오직 우리의 옛 생명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통찰하고 경험한 것에 바탕을 둔 태도였다.
죽으면서, 우리는 산다
고기잡이 그물을 호숫가에 버린 시몬과 안드레아 사도이든, “죽은 사람들의 장사는 죽은 이에게 맡겨라”는
소리를 들은 예비 제자이든, “용서받고, 더 이상 죄를 짓지 마라”는 말씀을 들은 간음한 여인이든,
예수를 따른 사람들 중에 무엇인가 뒤에 남기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이 점이 본 회퍼의 사상에 기반이기도 했다.
“십자가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행복한 삶을 끝맺는 비참한 종말이 아니며,
그리스도와 우리의 일치가 시작되는 점에서 우리를 맞이한다.
그리스도가 사람을 부를 때, 그분은 그에게 와서 죽으라고 명령한다.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제자들이 무엇인가 재난, 무기력, 죄악 등 뒤에 남기는 것은
무한히 더 가치있는 것을 위해서이다.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
그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그것을 다시 묻어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마태오 13,44).
그리스도가 추종자들을 부를 적에 그분은 그들에게 와서 살라고 한다.
죽음과 삶의 주제가 상호 혼합 되어있는 모습은 바오로서간에 자주 나타난다.
이미 제자들은 이 지상의 삶에서 죽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에 부활했다고 바오로사도는 주장한다.
“예전의 우리는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라고 믿습니다”(로마서 6,56).
또 다른 곳에서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여러분은 지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고,
천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십시오.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는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동정심과 친절한 마음과 겸손과 온유와 인내로 마음을 새롭게 하여 서로 도와주고,
피차에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그 뿐만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십시오”(골로사이 3,2. 12-13).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는 것은 죽을 때만이 아니라, 오늘 이 순간이며,
그리스도교 입문예식의 중심인 세례성사의 의미이기도 하다.
세례성사는 정화예식이 아니라, 실상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적으로 재현하는 성사이다.
세례를 받으면서 초기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세상에” 죽고 어리석게 보이거나 미친 것같이 보이게 하는,
심지어 전복적으로 느껴지는 가치관을 받아들였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세주와 동맹을 선포하였다.
그것은 구세주의 운명, 즉 체포와 고문과 수치스러운 죽음에 동참하는 선택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런 죽음은 자기 자신과 죄에 죽는 우선적이고 자발적인 과정의 정점일 뿐이었다.
바오로사도의 말처럼, “우리는 매일 죽는 것 같으나,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Ⅱ고린토 6,9)
박해시기가 끝났지만, 사막의 교부들은 광야 속에 머물며 다른 영역에서 그들의 생명을 바치고자 했다.
그들의 욕망과 세상의 가치관에 죽으면서 그리스도교 시대에도 사람들이 악덕, 탐욕, 권력에 대한
갈증으로 물드는 것을 보았고, “새로운 생명 안에서” 거닐기 위하여 노력했다.
그러한 영감은 후기 수도회 전통 속에 이어졌고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모든 회심이 다 바깥세상과의 급격한 단절로 표현되지는 않는다.
가장 즉각적인 회심의 결과는 처음에 내면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죽는 것 자체는 여전히 실제적이다.
어거스틴 성인은 죄에 대해 죽는 것이 단순히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성찰한다:
“나는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가져다 줄 죽음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성인들뿐만 아니라 우리들 모두에게도 삶과 죽음은 많은 차원에서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는 육체적 죽음의 문제와 그 너머에 있는 모든 문제들을 직면하기 훨씬 전에 그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죽어 가는 것이 아니라, 무기력함이다.
무기력으로 치닫는 삶의 방식들을 우리는 확실히 알고 있다.
또한 동시에 신비스럽게도 더 활기찬 삶으로 이끄는 죽음의 길도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신앙생활에 각인되어 있는 어떤 표지를 드러내 준다.
그 표지를 읽을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을 단순히 적이나 끝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앙의 눈에 의하여 우리는 직면하는 모든 상황 속에서 새롭고
더 위대한 생명으로 이끄는 길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우리는 육체적 죽음에 직면했을 때조차,
하느님이 그런 길을 마련하신다고 믿는 것이 더 이상 어떤 비약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나를 붙드는 존재를 신뢰하기
헨리 나웬이 생의 마지막 수년 동안에 쓴 저서들을 보면, 그가 이 특별한 본향(죽음)에 대하여
얼마나 많이 관상하고 준비했는가를 잘 알아볼 수 있다.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얼마나 더 오래 살 것인가?... 한가지 사실은 분명한 것 같다.
매일 매일을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단순한 진리인가!
그런데도 나의 노력은 아직도 부족하다.
나는 오늘 평화를 주었는가?
어떤 사람의 얼굴에 웃음을 띄게 했는가?
치유의 말들을 했는가?
내가 지닌 분노와 회한을 놓았는가?
용서했는가?
사랑했는가?
이런 것들이 진실한 질문들이다!
내가 지금 심는 작은 사랑의 씨앗이 지금 이 세계에서,
또한 앞으로 다가올 삶에서 많은 열매들을 맺을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이것은 그냥 우연히 지나치는 생각들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에 대한 관망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였던 사람,
그리고 그런 관망에 따라 온 삶의 태도를 순응시켜 나갔던 사람의 깊은 성찰이다.
죽음에 대하여 던져야 할 중심적인 질문은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죽어 가는 모습이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
그리고 우리를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우리 자신과 하느님의 성령을 보내는 새로운 길이 되도록”
어떻게 죽음을 준비할 것인가 이다.
이러한 나웬의 성찰에 특별한 촉매제가 되었던 것은 새벽공동체로 옮긴 후 겪었던 교통사고였다.
그는 이 사고로 거의 죽을 뻔했는데, 목숨이 위태로웠던 것 이외에 어떤 다른 체험을 하게 되었다.
후에 그는 이 체험을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예수에 대하여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내가 경험했던 그 거룩하고 충만한 현존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내가 본 것은 따스한 빛도, 무지개도, 혹은 열린 문도 아니었다.
내가 느낀 것은 인간적이지만 거룩한 현존, 그 자체였다.
그 거룩한 존재는 나에게 가까이 오라고, 또한 모든 두려움을 놓으라고 초대하고 있었다.”
그는 매우 혹독한 고통을 겪었지만 한편으로 인생에서 가장 편안한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그는 이렇게 쓴다. “죽음은 그 권세를 잃었다.
그리고 나를 너무나 친밀하게 둘러싸고 있던 생명과 사랑 속에 소멸하고 말았다.
마치도 바다를 걷고있는데 파도들이 멀리 사라져버리는 것 같았다.
나는 다른편 해안가로 안전하게 가고 있었다.
모든 질투, 회한, 그리고 분노가 부드럽게 사라져 갔고,
지금까지 내가 걱정했던 그 어떤 권세보다 사랑과 생명이 더 크게, 더 깊게, 더 강하게 나타났다.”
그 전에 나온 책을 읽은 독자라면 나웬의 타고난 걱정하는 성향을 알고 있을 터이고,
그래서 위의 표현이 지닌 의미가 얼마나 큰 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평화의 선물”을 받으면서 나웬은 다른 사람들과 새로운 깨달음을 나눠야 한다고 느꼈다.
영원과 만나는 체험을 한 후, 그는 그에게 주어진 덤 같은 시간을 “지상 그 건너편”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만일 신학이 “하느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라면,
그에게는 “좀 더 신학적으로 살고 다른 이들도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돕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이전에 나온 책에서 나웬은 우리들의 생명이 우리에게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속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제 그는 그런 인식을 죽음에까지 적용한다. 우리가 죄책감, 수치감, 분노, 회한을 갖고 죽는다면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세상에 남기는 유산이 되어 우리가족과 친구들의 삶을 옭죄고 무겁게 만들 것이다.
또 다른 한편, 죽음을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느끼는 평화를 다른 이웃에게 전해주는 선물이요 기회로 여기고 떠날 수 있다.
나웬은 이 주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특히 일생 서커스에 매료되어 있던 그는 한 이미지를 서커스에서 뽑아낸다.
가까이 지냈던 서커스 일가의 한 공중곡예사가 “날으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를 붙잡는 사람이 모든 것을 한다”라고 말했을 때, 나웬은 깊은 감명을 받는다.
그 곡예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내가 밑에서 붙잡는 사람에게 날아갈 때,
난 그저 내 팔과 손을 그를 향해 뻗칠 뿐이지요.
그러면 그는 나를 붙잡아서 밑의 착지대 안에 안전하게 내리도록 끌어당깁니다...
날으는 사람은 날아야 하고, 붙잡는 사람은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날으는 사람은 팔을 뻗으면서 붙잡는 사람이 그를 위해 밑에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 서커스의 지혜에서 나웬은 위대한 힘과 위안의 메시지를 발견하였다.
우리는 흔히 우리가 얼마나 모든 것을 잘 통제하며 다스릴 수 있는가에 따라 우리의 정체성과 성공여부를 판가름한다.
그러나 마지막에 우리 삶의 최종의미는 우리가 얼마나 믿고 놓으며 타 존재의 손에
우리자신을 맡길 수 있는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그는 십자가 위의 예수님이 했던 말씀을 상기한다.
“아버지! 당신의 손에 제 영을 맡깁니다.” 나웬은 “죽는 것은 붙잡는 이를 믿는 것”이라고 성찰했다.
나웬은 자신이 죽기 몇 달전, 아담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았다.
아담은 그가 새벽공동체에 온 첫 해에 돌보았던 심각한 장애를 지닌 청년이었다.
나웬은 그를 통하여 늦은 나이에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이”가 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진정으로 깨달았다.
아담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상적 일들(먹고 말하고 입는 것 등)을 혼자서 전혀 할 수 없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왜 그런 사람이 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보다, “왜 하느님이 그런 사람을 살게 했는가?”가
먼저 던져질 질문이었다. 그러나 나웬은 아담의 삶과 죽음에서 복음이야기의 인간적인 재현을 보았다.
“아담은 매우 단순하게, 조용히, 그러나 파문을 일으키며 그곳에 있었다.
그는 단지 그의 삶 자체로서 우리 하느님의 놀라운 신비를 선포하였다.
‘나는 소중하고 사랑 받는 존재, 온전하며 하느님으로부터 태어난 존재입니다.’
아담은 침묵으로 이 신비를 증언하였다.
그 신비는 그가 말을 하거나 못하거나, 걷거나 못 걷거나,
자신을 표현하거나 못 표현하거나 상관없이 존재하는 신비였다.
그 신비는 다만 그가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와 상관 있는 신비이다.
아담은 하느님의 사랑 받는 아이였고, 사랑 받는 아이로 존재한다.
그것은 예수님이 오셔서 선포했던 소식과 같은 소식이다... 삶은 선물이다.
우리 각자는 고유하며 이름으로 알려지고 우리를 만들어 내신 존재에 의해 사랑 받고 있다.”
예수님 역시 짧은 공생활 동안에 별로 성취한 바가 없었다.
그분도 세상의 눈으로 보기엔 “실패”하고 죽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과 아담은 모두 하느님의 사랑 받는 아들들이다
예수님은 본성으로, 아담은 ‘입양’으로 그리고 그들은 우리들 사이에서 아버지 하느님의 자녀로 살았다.
그것이 아버지 하느님께 봉헌해야 할 유일한 제물이었다.
자녀로서의 삶, 그것이 예수님과 아담에게 유일하게 맡겨진 사명이었다.
그것은 또한 당신과 나의 사명이기도 하다.
그 사명을 믿고, 그것으로부터 살아가는 것이 참다운 거룩함이다”라고 나웬은 쓴다.
나웬은 아담에 관한 책을 썼다.
그는 아담의 삶을 통하여 우리 각자의 삶이 예수의 삶 안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의 삶 역시, 예수의 삶 안에서 설명된다고 믿었다.
나웬은 아담의 죽음으로부터 팔을 뻗쳐 자신의 비상을 준비해야 한다는 초대를 느꼈던 것 같다.
중력으로부터, 육체와 정신의 온갖 뒤틀림으로부터 그를 기다리고 있는,
붙잡는 존재의 품안으로 스며들어가는 비상을.
나웬은 이렇게 썼다. “마치도 아담이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헨리! 두려워하지 말아요. 나의 죽음으로 인해 당신이 죽음을 맞아들이는 것을 돕도록 해 주세요.
당신이 더 이상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당신은 충만하게,
자유롭게, 그리고 가득찬 즐거움으로 살수 있어요.’”
그 소리는 전에도 들었던 소리였다.
사후에 발간된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8년 동안 많은 친구들과 친척들이 떠나갔다.
나 자신의 죽음도 그렇게 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전보다 더 깊고, 더 강한 사랑의 소리를 안으로부터 듣는다.
나는 그 소리를 계속 믿고 싶다.
그리고 그 소리에 이끌려서 나의 짧은 삶의 경계를 넘어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 안에 모든 것이 되시는 곳으로 가고 싶다.”
죽음의 경고
시간은 다양한 얼굴들을 갖고 있다.
오랫동안 시간은 마치 고양이처럼 늘쩍지근하게 기지개를 켜며 별다른 변화 없이 한 가지에
이어 또 한가지 일이 일어나며 지나간다.
그러나 때때로 성서가 kairos라고 표현한 것처럼, 특별한 때가 생겨난다.
무엇인가 숨겨진 의미를 드러내기 위하여 무르익은 때,
어떤 결정적인 응답을 요구하는 위기의 때가 이른다.
죽음도 마찬가지로 다른 모습들을 입는다.
멀리 떨어진 나라의 지진피해자들, 혹은 신문에 난 유명인사의 부고기사로 만나는
죽음의 모습은 추상적이고 비인격적인 얼굴이다.
그 때 만나는 죽음은 우리자신의 죽음을 잠깐 상기시키며 스쳐 지나가는 모습이다.
한가지 일화 같은 모습에 불과하다.
그러나 죽음이 우리와 매우 중요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닥칠 때는 다른 느낌을 주기 마련이다.
그 때에 죽음은 일화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보는 모든 것에 다른 빛을 던지는 치명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된다.
이 대격변에 영향을 받지 않는 별들, 모든 무죄한 피조물들이 우리를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죽음의 사건이 이처럼 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일어날 때, 모든 것이 달라진다.
가까이 와 있는 죽음을 숙고해도 그것이 가장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것 이외에 아무런 새 정보를 얻을 수 없다.
세계는 바로 그 지점으로부터 다르게 보인다.
두려움, 절망, 공포가 다가온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준비가 되지 않았는지,
다르게 처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수많은 일들,
미완성과 미해결의 많은 일들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죽음이 가까이 오면, 이상하게도 해방의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죽음이 가까이 다가온다는 사실에 직면했을 때만큼
삶을 충만하게 느껴본 적이 없다고 증언한다.
많은 걱정들과 주의들이 별 상관이 없게 된다.
많은 것들이 그것들의 참다운 가치에 따라 분명해지고 확연하게 드러난다.
또한 더욱 심오해진다.
1945년 나치수용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던 알프레드 데프(예수회)신부는 감옥에서 이렇게 썼다.
“지난 마지막 주간 동안 삶은 갑자기 훨씬 더 온순해졌다.
너무나 단순하고 평범하게 보였던 수많은 것들이 새로운 차원을 띄게 되는 것 같다.
보이지 않던 온갖 측면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거의 만질 수 있게 된다.
항상 알고 믿었던 것들이 지금은 너무나 구체적인 모습을 보인다.
나는 그것들을 믿지만, 또한 그것들을 살고 있다.”
죽음은 가장 용감한 사람들에게도 공포와 두려움을 일으키게 할 수 있지만 더 긍정적인 영향도 가져다 줄 수 있다.
죽음은 우리로 하여금 강력하게 정신을 집중시켜서 영적인 통찰과 도덕적 분별력을 크게 해주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들은 “행복한 죽음”이란 적절한 예고와 준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죽음이라고 한다.
초기교회시대의 영적인 대가들은 죽음에 대한 깨우침을 영적인 혜택이라고 하며 감사했다.
예를 들면, 「준주성범」의 저자인 토마스 아 켐피스는 이렇게 썼다.
“당신은 마치 오늘이 당신의 죽음의 날처럼 여기며 모든 행위와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결국 모든 날은 우리의 마지막 날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항상 준비하고 살아야 하며, 그래서 죽음이 준비 안된 당신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해야한다.”
책의 또 다른 부분에서 아 켐피스는 이렇게 썼다.
“만일 사람이 사는 동안 내내, 죽을 때에 발견하고자 하는 자기의 모습이 되려고 노력한다면,
그는 행복할 뿐만 아니라, 현명한 사람이다.”
「무지의 구름」(14세기 페스트가 창궐할 때 쓰여진 신비적 고전서)을 쓴 익명의 영국저자는 기도할 때
어떻게 마음을 모을 수 있는지 다음의 충고를 하고 있다.
“기도를 시작할 때 그 기도가 길건, 짧건 상관없이 가장 당신에게 도움이 되는 길은 기도가
끝났을 때에 당신이 죽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기도를 끝내기 전에 당신이 죽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저자는 이어 덧붙이기를, “물론 확실하게 당신은 기도보다 더 오래 살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에 의지하는 것은 잘못이고, 당신자신에게 그것을 약속하는 것은 실수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인정을 하든, 안하든 간에 우리 모두는 탄환이 들어있는 권총을 우리 머리에 대고 살고 있다.
오늘 권총이 발사되지 않으면, 아마도 내일 발사될 것이다. 내일이 아니라면, 언젠가는 발사될 것이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다르게 행동해야 하는가?
모든 말과 행위가 우리의 궁극적인 의도를 담는다면,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나?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일이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인가?
어떤 이가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면, 어떤 걱정들을 놓아야 할까?
우리는 전쟁, 테러리즘, 그리고 비이성적인 폭력 등으로부터 오는 죽음의 영상과 실제에 둘러싸여 있을 뿐 아니라,
핵 재앙, 환경파괴로 인한 영혼의 무기력에서도 죽음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우리문화 속에서 개인의 죽음은 대부분 병원이나 양로원에 숨겨져 있다.
그래서 죽음은 우리의 행동과 우선순위를 조정해야 하는 중대한 이유나 급박한 약속처럼 보이지 않고,
통계숫자로 우리의식 속에 남게 된다.
물론 삶에 대한 우리의 역량을 마비시킬 수 있는 죽음에 대한 병적인 집착현상도 있다.
그러나 그런 현상보다 더 일반적인 현상은 죽음을 피하려는 두려움에 찬 선입견,
전심을 다해 참여하기를 요청하는 삶에 무디어지게 만드는 선입견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쉽게 모험, 위험에 대한 두려움, 불편함에 대한 두려움,
우리로 하여금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식에 대한 두려움으로 바뀔 수 있다.
그리하여 죽음의 망령은 우리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모두를 갇힌 죄수로 만들 수 있다.
그러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왕 앞에 자신의 양심을 내보이며
죽음을 불사했던 토마스 모어의 평온함, 자유와 비교해 보자.
왕에게 최고의 충성을 서약하라는 친구의 말에 토마스 모어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렇습니다. 나는 오늘 죽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내일 죽을 것입니다.”
성인들이 우리들 모두보다 매 순간이 그들의 마지막 순간이라고 인위적으로 기대하면서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지만, 죽음에 대한 정기적인 성찰을 통하여 삶의 의미와 종착점을 기억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매순간의 가치와 긴급성을 진심으로 깨어 기억하면서 그들은 자신들과 모든 중요한 것들에 대한 명확한 의식을 유지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더 이상 그들에게 족쇄를 채우지 못했다.
그들은 다른 편으로 건너갔다. 그들은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 과월했다.
그리고 죽음이 그 권능을 잃었을 때, 모든 것 (행복마저도)이 가능하다.
생명의 씨앗
영국의 가톨릭 작가인 도날드 니콜은 암으로 죽으며 생의 마지막시기에 감동적인 일기를 썼다.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살아있는 그 어느 누구도 죽음에 대하여 나에게 가르칠 수 없다.
살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그것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하여 가르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죽었거나, 어떤 식으로든 그 경험을 목격한 사람들뿐이다.
순교자들(증거자들)은 적어도 우리에게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순교자들과 선조들에게 우리를 동반자로 받아달라고 청한다.
그들이 가르쳐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온 마음을 다해 죽음 속으로 들어가고,
온 마음을 다해, 그리고 즐거움 안에서 죽음에 대한 경험을 포옹하라는 것이다.”
처음의 순교자들은 참으로 그들의 죽음을 진심으로 포옹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처형대로 나아가면서 찬송가를 부르거나 공개적으로 기도했다고 초기순교사화는 전한다.
용기와 확신에 가득찬 그들의 모습에 처형자들조차 놀라움과 두려움에 떨었고,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을 북돋아 주었다.
그래서 초기 그리스도교 신학자인 터틀리안은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던 것이다.
교회는 시작부터 이들 순교자들을 특별한 안내자로 삼았다.
그들의 죽음은 어떤 한 죽음이 아니라 뽈리까르뽀 성인의 죽음처럼, “복음과 하나된” 죽음이었으며,
신비스러운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수난을 재현한 죽음이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면서 순교자들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닮았을 뿐만 아니라,
부활에 대한 그들의 강력한 신앙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순교시대는 네로와 디오클레시안 시대로 막을 내리지 않았다.
현대세계의 곳곳에서 많은 남녀들이 그들의 신앙에 댓가를 치루었고
그들의 죽음은 그런 의미에서 “복음에 일치된” 삶이었다.
그리고 순교자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친다.
그들의 이야기는 죽음에서 끝났기 때문에 특출한 것이 아니다.
또한 그들이 우리에게 모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가르쳐 준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나 최소한도 그들은 한가지 진실을 증언하고 있는데, 그것은 모든 사람과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진실이다.
즉 인간 삶의 가장 고귀한 목적은 할 수 있는 껏 우리의 신체적 실존을 연장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마르틴 루터 킹 2세 목사는 1967년의 한 인터뷰에서 위의 진실을 표현하는 태도를 보인다.
“나는 매일 죽음의 위협과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수년 전, 만일 죽음이 나를 정복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전혀 내가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오래 사는가가 아니라 높고,
고귀하고, 선한 진실들을 전하는 나의 의무를 얼마나 잘 수행하는가 이다.”
실상 킹은 공적인 여정을 시작하던 초기에 이미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1956년 1월 어느 늦은 밤 걸려온 전화를 받았을 때, 그는 사악스러운 죽음의 위협을 느꼈다.
그런 전화가 하루에도 수십 번 걸려왔고 그 때는 보통 일어나는 일이었다.
이미 그는 몽고메리 버스타기 거부운동 이후로 엄청난 폭력과 증오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 자신과 가족들은 더 이상 위협을 견딜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다.
그는 부엌으로 가서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하느님께 향했다.
후에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어디에선가 알 수 없는 곳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마르틴 루터! 의를 위하여 일어서거라. 정의를 위하여 일어서라.
진리를 위하여 일어서라. 그러면 보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그 후에 그는 “모든 것을 대면할 준비가 되었다”고 말했다.
마르틴 루터 킹의 이어지는 길은 끊임없는 위험에 노출되는 길이었다.
그 소리를 들은 지 사흘 후, 그의 집은 폭발했다.
계속해서 감옥에 투옥되었다.
어떤 때는 거의 치명적으로 칼에 찔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의심과 절망의 유혹을 받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그는 계속 사회 불의와 증오의 뿌리에 더 깊숙이 내려갔으며,
복음의 근본적인 도전 속으로 더 나아갔다.
그러면서 그는 마지막 약속을 향하여 서서히 다가갔다.
1968년 4월 그는 멤피스에서 청소원들의 파업에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분위기는 긴장으로 고조되어 살벌했다. 폭력이 코앞에 있었다.
그의 유명한 “꿈”은 점점 더 악몽이 되어 가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월 3일 저녁, 그는 한 시위에서 연설을 했고 다음의 말들로 끝을 맺었다:
“자, 이제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앞날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에게는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산꼭대기에 가 본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걱정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오래 살고 싶습니다.
오래 사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습니다.
나는 다만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고자 합니다.
그러면 그분께서 나를 산꼭대기에 올라가라고 하실 것입니다.
나는 꼭대기에서 둘러봅니다. 약속된 땅을 봅니다.
아마도 여러분들과 함께 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이 오늘밤 우리가 한 백성으로서,
약속의 땅에 이를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나는 오늘밤 행복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나는 아무도 무섭지 않습니다. 나의 눈은 영광스럽게 오시는 하느님을 봅니다.”
그는 다음날 암살되었다.
순교자로서 죽는 것을 교회는 특별한 소명이라고 여겨왔으며,
소수의 사람들이 순교에 초대되므로 아무도 순교를 적극적으로 추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마르틴 루터 킹이 암살전야에 암시했던 행복이 그의 죽음보다 우리와 더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성인들의 행복에 관한 한, 그것은 주로 내적인 신뢰의 문제이며 아무리 위험한 상황이라고 해도 내적인 신뢰만 있다면,
그것은 행복으로 가는 올바른 길이며, 그의 영혼과 운명은 사랑스러운 하느님의 손안에 있다.
성인들에게 행복의 기반은 또 하루나, 또 하나의 절기를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신뢰와 확신이다.
바오로 사도가 말한 것처럼, “우리들 가운데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사람도 없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죽더라도 주님을 위해서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도 주님의 것이고, 죽어도 주님의 것입니다”(로마서 14,7-8).
죽음과 친구가 되기
“Martyr”(순교자)라는 단어는 그리스말 “증거자”에서 온다.
물론 순교자들은 목숨을 바치면서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그들의 신뢰를 증언한다.
그렇게 하면서 그들은 또한 신앙이 어떻게 한 사람으로 하여금 용기와 평온함을 갖고 죽음과 대면 할 수 있게 하는지 증언한다.
물론 순교자의 죽음은 보통 고문과 폭력이 수반되는데, 소수의 사람들한테만 허락되는 예외적인 운명으로 보인다.
그러나 모든 죽음에는 고통과 두려움이 예외 없이 따라온다.
그리고 가장 좋은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에도 모든 익숙하고 친밀한 것으로부터
떠나 홀로 계속 가야하는 순간을 깊게 생각할 때, 두려움은 피할 수 없이 밀려온다.
그런 사실 때문에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도 증언과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의 순리에 따라” 죽는 이들 까지도 거룩한 순교자들처럼 증언하고 섬김을 표현할 수 있으며,
남는 사람들의 신앙을 강하게 해주고 격려해 줄 수 있다.
죽음에 대하여 그러한 공적인 증언을 해준 사람들 중에 시카고의 사랑 받는 대주교였던 죠셉 버나딘 추기경이 있다.
죽음 앞에서 그가 보여준 용기와 평정은 그가 성취한 다른 많은 일에 대한 기억보다 더 오래 남아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1996년 죽음이 다가왔을 때, 버나딘은 미국의 가톨릭 교회에서 뛰어난 지도자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는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 초대 사무총장이었고, 후에 주교회의 의장을 지냈다.
핵전쟁에 관한 주교들의 사목교서를 초안한 주교위원회 위원장이었고 신시내티 교구장을 지냈으며,
54세에 추기경에 임명되어 시카고의 교구장이 되었다.
이밖에도 생명의 거룩함에 접근한 교서, 「솔기없는 옷」을 작성하였다.
이 문서에는 교회의 낙태반대, 사형제도 및 안락사 반대, 평화와 사회정의에 대한 관심,
사회의 가난하고 가장 연약한 이들에 대한 투신 등, 교회의 입장에 합류하는 일관성 있는 윤리가 표현되어 있다.
그의 공적생활의 모습은 이러했다. 그러나 그의 삶에는 또 다른 측면, 덜 보여지는 측면이 있었다.
그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는 수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몇 명의 사제들 그룹이 도전적인 질문을 제기하며 그를 만났다.
그들은 버나딘의 삶이 교회에 더 치중해 있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에게 더 집중되어 있는가를 고려해 보도록 청했다.
그들의 질문은 버나딘에게 깊은 충격을 주었고, 그는 자신의 삶에서 많은 우선순위들을 재고하였다.
먼저 그는 매일 아침 더 일찍 일어나 더 많은 시간을 기도에 쏟았다.
그는 저금을 다 비워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변화는 그의 외모에조차 반영되었다.
한 때는 풍채가 좋았으나 점차 생애 마지막 시기의 모습처럼, 더 수척하고 수도자다운 모습으로 변해갔다.
이 모든 것은 조용한 회심의 과정이었지만, 성공한 한 교회사람을 하느님의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앞으로 다가 올 시련에 그를 준비시켰다.
1993년 초에 버나딘은 혹독한 시련에 휘말렸다.
한때 신시내티의 신학생이었던 사람이 당시 그의 교구장이었던 버나딘에게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고소한 사건으로 그 시련은 시작됐다.
이런 비난에 당혹스러웠지만, 버나딘 추기경은 차분하게 확신을 갖고 응답했다.
그는 단호하게 그런 주장을 부인하고, 그가 직접 그런 사건들을 다루기 위하여
설립한 심사위원회에서 사건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상대방의 인격에 대해 비난하기를 거부했으며, 다른 성폭행 피해자들에게 피해가 될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사건은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극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면허가 없는 치료사의 말을 들었던 상대방은 그의 기억이 믿을만하지 못하다고 인정하면서 즉시 고소를 취하했다.
버나딘의 명성은 씻을 수 없게 손상되었지만, 그는 에이즈로 죽어가던 그 젊은 친구를 개인적으로 만나서
함께 미사를 드리고 그를 용서했다.
그래서 이 사건은 행복한 결말을 상으로 받으며 복음에 대한 강력한 증언으로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버나딘의 십자가의 길에 있어서 그것은 오직 시작일 뿐이었다.
위의 사건이 해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버나딘은 기자회견을 열고 그가 췌장암에 걸렸다고 발표했다.
이 개인적인 정보를 그의 “가족”인 시카고의 시민들과 나누고 싶은 모습은 버나딘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의 솔직함은 교회이든, 사회이든, 공직자들의 전통과 대조를 이루었다.
가장 건강한 상태에서 실제로 장례식때까지 계속하여 보고하는 방식이었다.
버나딘은 담당의사들에게 정기적으로 기자회견을 가지라고 부탁했다.
수많은 미국의 가톨릭인들이 수술, 방사선치료 등 그의 치료에 관한 세부사항까지 알게되었다.
교구장의 일상적인 의무 이외에 그는 같은 암환자들의 비공식 담당신부라는 새로운 역할을 맡았다.
수백 명의 환자들이 그에게 다가와 기도와 지지를 청했다.
그는 병든 사람들을 만나고 직분을 행하면서 사제의 삶의 의미를 다시 발견했다고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버나딘은 생명의 거룩함에 대한 변치 않는 신념과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러나 그의 선물은 고귀한 의무감과 책임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보통 인간의 약함과 연대하는 모습에서 더욱 더 가치 있고 빛을 발했다.
교구민들에게 보내는 사목서한에서 그는 회복기동안 “밤들이 얼마나 긴가를 발견했으며...
때때로 그전에는 거의 생각할 수도 없었던 일, 울고있는 자기 자신을 본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생활은 얼마나 많이 하잘 것 없고
중요치 않은 일로 소모되고 있는가를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1996년 8월 그는 다시 기자들 앞에서 자신의 암이 간에 전이되었고 수술조차 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그에겐 몇 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대교구 일에 대하여 말한 후, 그는 모여든 기자들과 대중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인다. “나는 참으로 성실한 마음으로 내가 평화 속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그것이 삶의 이 순간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특별한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죽음을 적이나 친구로 바라볼 수 있다. 적으로 본다면, 죽음은 불안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러면 죽음을 부정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죽음을 친구로 바라본다면, 우리의 태도는 참으로 달라진다.
신앙인으로서 나는 죽음을 친구로, 지상의 삶에서 영원한 삶으로 가는 이동이라고 본다.”
이 메시지의 내용은 특별하지 않다. 어느 주일날 강론의 내용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배경과 그런 권위에 의해 표현될 때에 메시지는 비범한 힘을 가진다.
추기경의 발표에서 헨리 나웬의 영향을 감지한 사람들은 틀리지 않았다.
버나딘은 후에 나웬의 방문을 받고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지 모른다고 표현했다.
나웬은 추기경을 방문하고 죽음을 친구로 여기는 것에 관해 조언을 했다
(그러나 나웬은 같은 해인 1996년, 추기경보다 앞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마지막 시기의 노력은 버나딘 자신의 책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화의 선물」에서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 인간의 조건에는 항상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공존한다는 것,
그리고 만일 우리가 ‘놓아버린 다면’, 만일 우리 자신을 온통 하느님의 손에 맡긴다면,
선이 이긴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돕기 위하여” 썼다고 말한다.
신뢰하고 놓아버리는 과제는 일생 걸리는 과정이며, 삶이 끝날 때까지 계속 되는 것이라고 버나딘은 알려준다.
1996년 9월의 기자회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주교로서 나는... 인간 생명의 고유한 가치,
그리고 생명에 대한 우리의 공동 책임이라는 도덕적 메시지를 표현하기 위하여 애썼다.
나의 삶이 천천히 사라져 가는 때에, 나에게 주어진 현세의 시간이 매시간, 매일 마감되는 때에 나는 불안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 생명의 경이로움에 대한 확신이, 생명이, 하느님의 존재로부터 흘러나오는 선물이며
우리 모두에게 위탁된 선물이라는 확신이 다시금 선명해지고 있다.”
마지막 주간에 생명의 불꽃이 눈에 띄게 짧아지면서 버나딘은 단지 동료 가톨릭인들 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사람들, 심지어 무신론자들, 불가론자들로부터도 엄청난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쇠잔한 모습이지만 신앙으로 충만한 사람이 죽어 가는 방식으로 가장 위대한 선물을 주고
증언하는 모습은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주었다.
버나딘 추기경은 1996년 11월 14일에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날 시카고시는 정지되었으나, 그의 가르침은 계속되었다.
그의 책이 발간되었고 죽기 며칠 전 그는 봄이 겨울에 따라 올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봄에 살아있지 않을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곧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생명을 경험할 것이다.
비록 죽은 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지만, 하느님께서 이 지상에 사는 동안 나의 온 힘을 다해
그분을 섬기도록 부르셨던 것처럼, 지금은 집으로 나를 부르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전에 그리고 후에
그리스도교는 우리 존재의 신비에 대하여 유일하게 대답을 제시하고 있는 종교가 아니다.
수많은 철학자들과 종교교사들이 인간존재의 근원, 의미, 종착점에 대하여 질문들을 던져왔다.
다만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있어 새로운 것은 한 사람하느님의 아들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의 미래 운명의 베일이 걷혔다는 것이다. 죄를 벗어버리고 무기력의 무게를 그리스도의 영을 입은 사람들에게
죽음은 더 이상 두려워해야 할 적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영으로 살게 하고
삶을 포옹하며 한 뼘 같은 인생을 믿게 하였고, 지상이란 그 너머에 있는 신비스러운 심연에 열려있는
작은 항구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도록 했다.
예일대학의 학생들로 가득찬 교실에서 헨리 나웬은 어느 날 칠판에 자신의 생년월일,
1932년을 적고 짧은 줄을 그으며 2010년이라고 적고 그 뒤에 물음표을 찍는다.
“이것이 내 인생을 표현할 수 있다”고 그는 청중에게 말했다, “시작과 끝이 있는 유한한 기간”
(그 방에 있었던 나웬과 학생들 중의 아무도 나웬의 생명줄이 실제로 얼마나 훨씬 짧았는가를 그때는 몰랐다).
그리고 나서 머리를 흔들며 칠판으로 다가와 칠판의 한끝에서 다른 한끝까지 줄을 그으며 말했다,
“나는 어디에선가부터 와서 어디론가 가고 있다.”
나웬이 깨달았던 것처럼 우리 존재의 근원은 하느님이시다
그리스도교 전통은 그렇게 가르친다 그리고 하느님은 우리의 궁극적인 종착점이다.
인생에서 우리의 과제는 그것이 짧든 길든, 슬픔으로 무겁든 축복으로 가볍든 혹은 대부분의 삶처럼
슬픔과 축복이 혼합되어 있든 우리의 진정한 종착점으로 우리를 이끄는 길을 찾는 것이다.
명성과 재물, 혹은 위대한 성취 그 어떤 것도 우리와 함께 지상의 저편으로 건너가지 못할 것이다.
회한, 증오, 분노, 그리고 후회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마치 황금처럼 그것들을 생각하며 매달린다.
우리와 함께 그것들을 가져가는 것은 그야말로 지옥일 것이다.
온전한 마음으로 사랑하려는 우리의 능력을 약화시키는 모든 것들을 놓거나 벗어버리는 길을 배워야 한다.
놓아 버리는 것이 덜 고통스러운 길이다.
죽음은 우리가 완성시키지 못하고 남긴 일들을 끝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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