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11월9일 오늘은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연화리 산57-9 신나무골을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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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지방 선교의 요람지인 신나무골은 박해 시대 교우촌으로 1815년 을해박해 때부터 신자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신나무골은 외지고 깊숙한 산골이면서도 대구를 지척에 둠으로써 많은 선교사들이 대구 진출의 전초 기지로 삼았고, 샤스탕 · 다블뤼 · 최양업 · 리델 신부 등이 사목 활동을 했던 곳입니다. 1866년 병인박해로 신나무골의 신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가 박해가 잦아들면서 다시 모여들었고, 1882년부터는 영남지방 선교에 지대한 역할을 한 로베르(김보록) 신부가 순회 전교를 시작했습니다. 1896년 한불조약 이후 로베르 신부는 신나무골을 거점으로 삼아 활발한 전교 활동을 펼쳤고, 교육 사업에도 큰 관심을 기울여 ‘연화 서당’이라 불리는 신나무골 학당을 설립했습니다. 1883년 세워진 이 학당은 1920년 신동에 초등학교가 설립될 때까지 신학문과 구학문 그리고 천주교 교리도 함께 가르쳤습니다.
1860년 경신박해 때 잠시 신나무골로 피신했던 배정모와 부인 이선이 엘리사벳 그리고 세 아이는 포졸들을 피해 한티로 다시 숨어들었습니다. 하지만 포졸들에게 붙잡혀 “죽어도 성교를 믿겠다.”며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 이선이와 장남 배 스테파노는 작두날에 목이 잘려 순교했습니다. 배교하고 풀려났던 남편은 뼈저린 아픔 속에 부인과 아들의 시신을 그 자리에 묻었다가 다시 선산이 있는 칠곡의 안양동으로 부인의 시신만 이장했습니다.
대구대교구는 1977년 제1차 신나무골 성역화 사업을 완수하고 이곳에 ‘대구 천주교 요람지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1984년 한국 천주교회 창립 200주년을 맞아 왜관 성 베네딕도 수도회의 주선으로 순교자 이선이(엘리사벳)의 묘소를 이장하고, 대구 본당의 첫 본당 터를 복원하여 로베르 신부의 사제관과 신나무골 학당, 전시관을 복원했으며 마당에 로베르 신부 흉상흉상을 건립했습니다을 건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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